성서연구-성서번역과 성서의 지명(구약성서 확대경 ②)-이주형

-이스라엘 나눔지 [제13호]에서-

"청주(淸州)에서 대전(大田)으로 갔다" 라는 말을 외국 사람이 번 역을 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사람은 한국의 지형을 잘 모르는 상태 에서 '청주'와 '대전'이라는 말의 의미를 번역하기위해 별의별 생각 을 다해서 결국은 "맑은 고을에서 커다란 밭으로 갔다"라고 번역했 다면 얼마나 기가막힌 번역인가! 그 땅에 대한 지형과 지명을 모르 면 어쩔수없이 생겨나는 번역상의 오류라고 할 수 있다. 마찬가지 로 사사기 9장 37절의 내용은 이스라엘 땅과 세겜 주변지역의 지 형과 지명을 모르기 때문에 빚어진 번역상의 오류가 드러나는 구절 이다.
문제가 되는 본문은, "가알이 다시 말하여 가로되 보라 백성이 밭 가운데로 좇아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로 좇아오는도다(개역)"라고 되어있다. 본문의 내용은 문맥적으로 문제 점을 쉽게 들추어낼수 없을 정도로 번역이 매끄럽다. 마치 "맑은 고을에서 커다란 밭으로 갔다"라는 식이기는 하지만 내용을 이해하 는 데 전혀 방해를 주지 않는다. 따라서 성서의 독자는 가벼운 마 음으로 상기 본문을 읽어내려 가지만, 사실상 본문의 내용을 올바 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은 벌써 차단되어진 본문이 되어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올 바른 번역이 우선되어야 한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고 믿는 다. 그러므로 앞서 지적된 본문의 정확한 내용을 살펴보아야 한 다.
우선 공동번역과 표준새번역은 어떻게 번역했는지를 살펴보자. "다시 가알이 말하였다. 저것 보시오 사람들이 저기 배꼽마루에서 내려오고 다른 한 떼는 점장이 상수리나무 쪽에서 오고 있소(공동 번역)"와 "다시 가알이 말하였다. 보시오! 사람들이 높은 지대에서 내려오고, 또 한 떼는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쪽에서 내려오고 있소! (표준새번역)"의 내용을 개역성서 번역과 비교하더라도 도대체 헷갈 리기는 마찬가지다. "밭 가운데로", "배꼽마루에서", 그리고 "높은 지 대에서"라고 각각 다른 용어로 번역했기 때문에 어느 말이 맞는지 를 결정하기가 어렵다. "므오느님 상수리나무 길"과 "점장이 상수리 나무 쪽에서"라는 번역은 도대체 무슨 표현인가? 아무러면 어떠냐 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려고 마 음먹는 독자는 풀기 어려운 수수께끼 앞에서 당혹감을 느끼게 된 다. 과연 성서의 저자가 의도했던 표현은 무엇이었을까?

이 문절의 히브리어 본문은 다음과 같다.
wysp 'awd n'al ldbr wyamr hnh-'am yrdym m'am tbwr hartz wrash-ahd ba mdrk alwn m'awnnym(삿9:37)< BR>
.(삿9:37)
여기서 번역할 때 수수께끼 처럼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 바로 와 이다. 이것이 바로 '청주' 또는 '대 전' 처럼 지명으로 이해해야하는 구절이지 낱말의 뜻을 풀이해서 번역해야 되는 단어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위의 두 단어들은 세겜 지역에 있었던 지명들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지명에 대한 명 칭을 너무 친절하게 풀이해놓은 우리말 번역은 성서의 독자로 하여 금 성서 본문이 말하려고하는 본래의 뜻을 왜곡하게 만들었다. 따 라서 본문의 올바른 수정을 통해서 당시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이해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다.
사사기 9장 전체의 내용은 아비멜렉이 가알과 세겜 사람들의 반 역을 진압하는 내용이다. 아비멜렉은 기드온이 세겜에 있는 첩에게 서 얻은 아들로서(8:31;9:18) 오브라에 있는 다른 아들들 70명을 한 반석에서 모두 죽이고(9:5) 세겜의 왕이 되었다. 그리고 삼년이 지 난 어느날 가알이라는 사람이 세겜 사람들을 부추겨서 아비멜렉을 배신하게 만든다. 이 소식을 들은 아비멜렉은 자기가 살던 아루마 에서 군대를 네 떼로 이끌고 나와서 가알과 세겜 사람들을 공격한 다. 밤에 군대를 이동한 아비멜렉은 매복을 하고 있다가 다음날 아 침 항오를 벌인다. 오늘의 본문은 이러한 상황에서 아침 시간에 아 비멜렉의 군대가 공격해오는 모습을 보고 내뱉은 가알의 말이다. 아비멜렉의 군대가 tbwr hartz 와 alwn m'awnnym 방향에서 공격해오는 모습을 보고 가알은 당황하고 있 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문의 이해를 위해서 세겜 주변 지역을 살펴볼 필요 가 있다. 세겜은 사마리아 산지에 위치한 도시이다. 북쪽에는 에발 산이 있고, 남쪽에는 그리심산이 있다. 동쪽으로는 크비르 산이 있 고, 동남쪽으로는 자두아산이 있다. 세겜은 이러한 산들에 둘러싸 인 골짜기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여기서 아비멜렉이 머물렀던 아루마(9:41)는 동남쪽에 있는 자두아산 산등성이에 있었던 곳이다. 아비멜렉은 군대를 네 때로 나누어서(9:34) 항오를 벌였는데, 가 알은 그 군대들이 산꼭대기에서 내려오고(9:36)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한 떼는 당연히 아비멜렉이 거하였던 아루마에서 나왔을 것 이고, 즉 남동쪽 산 꼭대기로부터 내려왔음을 알 수 있다. 자두아 산에는 오늘날 '키르벳 우루마'라고 불리우는 곳이 있는데, 이곳이 바로 아비멜렉의 거하였던 아루마이다. 다른 한 떼는 매복하고 있 다가 아알의 군대 앞에서 일어난 군대로 스불이 가알에게 네가 산 그림자를 사람으로 보았느니라(9:36)라고 표현한 군대이다. 1913년 이후로 1973년까지 발굴되어진 세겜에는 두 개의 성문이 발굴되었 는데 북동쪽 문에서 이른 아침에 산 그림자가 지는 곳은 에발산 지 역이다. 따라서 가알이 산 그림자로 착각한 한 떼의 군대는 에발산 꼭대기에서 내려온 군대라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한 떼는 아루마 쪽, 즉 남동쪽 산인 자두아산에서 내려왔고, 다른 한 떼는 북쪽인 에발산에서 내려왔고, 그리고 나머지 두 떼가 내려온 지역이 의문으로 남는다. 여기서 우리는 가알이 목격한 두 떼의 군 대의 진행모습을 보게된다. 가알의 말에 주목하여 보자. "히네 암 요르딤 메임 타부르 하아레츠" 그리고 "로쉬 에하드 바 미데레크 엘론 므오느님". 바로 문제가 되는 본문이다. "히네 암 요르딤"은 '보시오! 백성이 내려오고 있소'라는 말이고, "메임 타부르 하아레 츠"는 '타부르 하아레츠에서부터'라는 뜻이다. 타부르가 가운데라는 뜻이 있고 하아레츠가 그 땅이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서 타부르 하 아레츠는 그 땅 가운데로라는 뜻으로 풀어서 해석할 성질의 단어가 아니다. 이 단어는 바로 지명을 나타내는 단어이다. 마치 청주를 굳이 맑은 고을이라고 풀이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서 "보시오 백성이 타부르 하아레츠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소"라고 번역해야되는 구절이다. 타부르 하아레츠는 세겜의 동쪽 산지인 크 비르 산등성이에 오늘날 '라스 타부르'라고 불리우는 지역을 말한 다. 즉, 다른 한 떼의 군대가 동쪽 산 꼭대기에서 내려오고 있는 상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로쉬 에하드 바"는 '한 떼가 온 다'라는 뜻이고 "미테레크 엘론 므오느님"은 '엘론 므오느님 길로부 터'라는 의미이다. 마찬가지로 엘론이 상수리 나무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구태여 풀어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단어이다. 마치 대전을 커다란 밭이라고 풀이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같다. 즉 또 다른 한 떼의 군대가 엘론 므오느님 길쪽에서 내려오고 있다는 말이다. 그 렇다면 "엘론 므오느님은 어디인가?"를 물어야지 "그것이 무슨 뜻 인가?"를 묻는 것은 본문이 표현하고자 하는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 지 못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즉, 세겜 지역을 둘러싼 지형세와 그 주변 지역의 지명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데서 기인하는 오류이 다. 엘론 므오노님의 정확한 위치는 불명확하지만, 일반적으로 세 겜성 바깥 쪽에 있었던 "신탁제의" 장소일 것으로 생각하며 그 위 치는 그리심산 쪽에 있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다른 한 떼의 군대는 남쪽산인 그리심산 꼭대기에서 세겜을 공격하려 내 려오는 상황이 설정된다. 가알이 스불에게 말한 것처럼 "보라 백성 이 산 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는도다(8:36)"가로 한 말이나, 아비멜 렉이 그를 좇던 모든 백성이 밤에 일어나 "네 떼로(8:34)" 나누어서 세겜을 공격했다는 표현과 너무도 잘 맞는 표현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아루마에 있던 아비멜렉은 군대를 네 떼로 나누어 동서남 북에 있던 산 꼭대기들로부터 세겜을 공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의 지형과 주변 지역의 지명을 통해서 성서의 본문이 말 하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것을 살 펴보았다. 사사기 9장 37절의 본문을 문제가 없는 듯 보이지만, 서 로 다른 번역본들이 서로 다른 번역을 해놓았다는 사실에서 이미 본문이 문제가 있는 본문임이 드러난다. 따라서 문제가 된느 본문 은 다음과 같이 수정되어야할 것이다. "보시오, 백성이 타부르 하아 레츠에서 내려오고 있소. 그리고 또 다른 한 떼가 엘론 므오느님 길쪽에서 오고 있소." 이러한 본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아비멜 렉과 가알이 벌였던 세겜 주변에서의 한 판 승부를 보다 더 현장감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성서의 저자는 세겜 주변 지역의 지형을 아주 잘 알고 있었으며 성서의 기록 또한 세겜 주변의 지형 과 명칭들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